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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해리 케인 대기만성형 스트라이커, 드디어 트로피를 들다

by 쇼타임라이브 2025.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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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리 케인의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늘 '무관의 아이콘'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죠.

 

그러던 그가 마침내, 커리어 사상 첫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이 글에서는 해리 케인의 유소년 시절부터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첫 우승까지, 오랜 인내와 끈기의 시간을 시간 순으로 되짚어보며 그 의미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유소년 시절의 좌절, 꿈을 향한 첫 걸음

해리 케인 선수의 축구 인생은 어릴 적 좌절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해리 케인은 6살에 리지웨이 로버스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8살의 나이에 2001년 아스널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했습니다.

 

하지만 체격이 작고 운동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1년 만에 방출당하고 말았죠.

 

 

그럼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리지웨이 로버스를 거쳐, 결국 11살에 토트넘 홋스퍼 아카데미에 입단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성장기 동안 신체가 강해지며 스트라이커로 전환했습니다.

 

2009-10 시즌, 토트넘 U-18에서 22경기에 출전해 18골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드러냈죠.

 

16살 생일에 토트넘과 스콜라십 계약을 체결하며 드디어 프로의 꿈을 향한 첫걸음을 뗐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는 리그컵과 FA컵 경기에서 벤치에 앉으며 프로 무대의 분위기를 익히는데 머물러야 했습니다.

 

케인의 유소년 시절은 끊임없는 기다림과 노력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아스널의 방출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좌절하지 않고 "대기만성"의 씨앗을 심고 있었습니다.

 

임대 생활과 성장: 기다림의 시간

프로 계약 이후에도 케인의 자리는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레이턴 오리언트, 밀월, 노리치, 레스터 시티 등 여러 클럽을 전전하며 실전 감각을 키워야 했습니다.

 

밀월에서의 활약으로 영 플레이어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토트넘 1군에서의 입지를 다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2014년 리그 첫 선발 출전과 첫 골을 동시에 기록하며 본격적인 커리어가 시작됩니다.

 


토트넘의 중심에서: 영광과 한계의 교차점

2014–15 시즌부터 케인은 토트넘의 핵심 스트라이커로 자리 잡았습니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3회, 시즌 41골 등 수많은 기록을 남겼으며, 토트넘 역사상 최다 득점자로도 이름을 올렸죠.

 

하지만 그 모든 영광 속에서도 '우승'이라는 단어는 그와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 리그컵 결승 등 중요한 무대에서 번번이 패하며 팬들과 함께 아쉬움을 삼켜야 했습니다.

 

출처 : 인터풋볼

국가대표의 아픔: 또 한 번의 눈물

케인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장을 맡으며 큰 책임을 졌습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득점왕, 유로 2020과 유로 2024 연속 결승 진출 등 인상적인 성과를 보여주었지만, 끝내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눈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놓친 것은 오랫동안 고통스러울 것이다”라며 고통스런 감정을 전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 이적: 우승을 향한 결단

2023년, 케인은 마침내 우승을 위한 이적을 결심하고 바이에른 뮌헨에 합류합니다.

 

당시 이적료는 약 1억 1000만 유로에 달했으며, 많은 팬들이 그의 '무관의 저주'가 이제 끝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은 그동안 분데스리가에서 최다 우승한 최고의 명문구단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첫 시즌 팀은 리그와 컵대회 모두에서 우승에 실패했고, 케인은 다시 한번 무거운 침묵을 견뎌야 했습니다.


2024–25 시즌: 마침내 빛난 순간

다음 시즌, 케인은 24골로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오르며 바이에른의 리그 우승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결정적인 경기에는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는 스탠드에서 우승 확정의 순간을 함께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팬들과 함께 “We Are The Champions”를 부르며, 그는 마침내 커리어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인내의 철학, 그리고 앞으로의 도전

케인의 여정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닙니다.

 

그는 좌절, 실패, 반복된 준우승을 모두 겪으며도 포기하지 않았고, 그 긴 여정 끝에 마침내 첫 우승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는 이제 챔피언스리그와 클럽 월드컵을 목표로 더 큰 무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팬들은 그의 다음 우승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해리 케인 주요 기록

항목 기록
토트넘 통산 골 역대 1위 280골 (435경기)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3회 (2015–16, 2016–17, 2020–21)
국가대표 득점 역대 1위 71골 (105경기)
분데스리가 득점왕 1회 (2024–25, 24골)
커리어 첫 우승 2025년 5월, 분데스리가 우승

❓ 해리 케인 FAQ

Q. 해리 케인의 첫 트로피는 언제였나요?

A. 2025년 5월,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하며 커리어 첫 트로피를 획득했습니다.

Q. 대표팀에서는 어떤 활약을 했나요?

A.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으로 월드컵 득점왕, 유로 결승 진출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우승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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